서어른

2024-07-14

English version here. It's not a translation - I had to write in my voice in each language. Each version ended up being very different. Feel free to read either or both.

영어 버전은 여기. 번역은 아니고, 각 언어의 내 목소리로 끄적였어요. 상당히 다르니 자유로히 읽어보세요.


Every day is yesterday / We don't look back / Go forward with no regrets / We, the young, forever mercy


1

한쪽은 겉쌍, 한쪽은 속쌍, 짝눈이다.
손톱 뜯기 버릇이 시작되었던 유치원 이후 처음으로 손톱을 기르고 있고,
애정하던 단발머리를 기르고 있고 (언제든 자를 수 있음),
내 눈엔 꽤 귀여운 주근깨가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땀 뻘뻘 흘리는 운동을 하구,
베를린의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자전거 타고 온 도시를 싸다니고,
주말이면 롤러스케이트 요런 저런 스텝을 연습한다.

이맘때쯤엔 까무잡잡해진 나를 보게 될 거다.


필름 사진의 텍스쳐는 여전히 마음을 몽글거리게 하고 그 번거로운 과정은 여전히 즐겁다.
비싸지는 필름 값에 디지털로 넘어갈까 생각만 200번 하지만 그러기엔 이 애정이 너무 크다.


올해는 나 자신에게 빈티지 캠코더를 선물했다.

My vintage camcorder

2

내 직업을 한국 사람에게 소개할 땐 ‘사서 고생하죠 하하 그치만 재밌어요’ 라고 한다.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 정말로 재미있다.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것. 누가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일. 을마나 설레는데.

아 혹시 모를까봐, 박사과정 1년차 이다.


3

아직도 때때로 조급함과 예민함을 다듬지 못해 후회할 때가 있고,
스쳐 간 인연을 보살피지 못한 것에 후회하기도 하고,
용기 내질 못해 간접적으로 상처 준 이들에게 쌓은 업보 돌려받으리라 생각도 가끔 한다.

매달 기부를 하는 건 세상을 향한 이타심 - effective altruism 의 철학이라면서도,
좋은 업보 쌓는 거라는 미신도 몰래 간직한다.
삶이 답답할 땐 타로점이라도 받고 싶다는 생각을 몰래 하는
과학자라는 타이틀로 돈 버는 사람이다.

Peter Singer의 윤리 철학에 동의하면서도
반밖에 실천하지 못하는 위선자이고,
10% Pledge 를 몇 년째 생각하면서도
현실의 즐거움과 내 주식계좌 배 채우기를 선택한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옳은 것과 편한 것 사이를 저울질하는
좀 멋지려다 만 사람이다.

명상이 내가 갈망하는, 내가 필요로 하는, 능력과 지혜를 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심지어 명상을 가르쳐 주고 함께할 사람들을 거쳐 왔지만서도
아직도 하루 10분 명상에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발꼬락만 살포시 담근 채 미래의 나에게 제대로 된 배움을 넘기는 게으름뱅이이다.


으으음 30대에는 좀 더 멋지고 좋은 사람이 되자 (◍•ᴗ•◍)


4

주변 몇몇이 방황보다 방향성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본다.
우리 세대에겐 어쩌면 아직 방황에 가까울 나이이지만
내가 갈망해 온 '영감을 받고 영감을 주는 삶'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 같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겪은 그 많은 헤어짐이 아니었다면
나는 과거에 집착하는 고집불통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나를 다듬어준 거라고.

결과론적이지만 원래 인생은 결과론적이야. 스티브잡스도 그랫음 ㅇㅇ


5

고딩 지혜에게 '지혜의 20대는 다양한 경험과 배움으로 내면에 많은 것을 쌓고 30대 부터 돈을 벌면 좋겠어, 그럼 더 너 다운 삶을 살게 될 거야'라는 조언을 주신 이름 기억 안 나는, 내 삶을 스쳐 간 미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진심으로 전합니다. 살면서 들었던 수많은 조언 중 이 말이 이상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늘 나와 함께 했어요. 저도 이제 20대 잘 보내고 졸업합니다.

이 글이 당신께 닿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마음으로나마 진심을 전해요.
건강하고 평안하세요 밥 잘 챙겨 드시구요.

오겡끼데스까

6

30대에는 피상적인 자극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 지길.
내면의 결핍에 휘둘리지 않도록 알아채고, 보듬고, 회복하길.
튼튼한 몸과 건강한 마음을 가져 나 자신과 주변 이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길.
내면이 단단해서 겉으로 강한 척할 필요가 없는, 강해서 부드러운 사람이 되길.
내면의 확신과 여유가 겉으로 드러나 그것이 아름다움이 되길.
빛이 나는 사람이 되길, 몇몇 사람들에겐 그 빛이 보이길 바란다. 사람들의 빛을 알아채고 귀중히 하는 사람이 되길.




이제야 서른이다! 아직 클 날이 잔뜩 남았다.

그 때도 지금도 청춘을 노래하는 혁오와 선셋롤러코스터 처럼 우리 모두 꾸준히 멋진 시간을 살아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