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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잘 찍은 것 같진 않다. 장 보러 가기 전 즉흥적으로 타이머 맞춰놓고 찍었다. 방에 햇살도 잘 안 들었고, 머리도 손보질 않았고 화장도 하질 않았다. 문에는 입고 나갈 플리스 자켓이 걸려있고, 바닥엔 박스가 쌓여있다. 게다가 이날 조금 부어있었다.

이건 평범한 나다. 그래서 그냥 좋다.



이 웹사이트가 대체 어떤 공간인지 고민이 많았다. 일단 만들어는 놨는데, 이제 뭐 어쩌지.

오직 나에 의한, 나에 대한, 진짜 나를 비추는 공간이었음 한다. 누구를 위한, 혹은 어떠한 관중을 타겟한 strategic content 가 아닌, 오직 개인적이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공간 말이다. 사람들은 우연히, 혹은 내가 궁금해서, 혹은 실수로, 혹은 영감을 받으러 (그렇다면 무한대로 황송하겠다) 들어오겠지. 대다수는 몇 초 둘러보다 영영 잊어버리겠다. 다만, 가끔 문뜩 생각나 들어와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나는 행복할 거야.

근황.

발이 가는 대로 뻗고 있다. 아직 길을 잃은 거라 해야 하나? 길을 찾았다는 말이 뭘까? 다들 무슨 길이라는 것을 걸어가는 걸까?

어느새 난 세 살을 더 먹었고, 요가에 깊은 애정이 생겼고, 여전히 밥 챙겨 먹는 건 귀찮다. 그냥 석사를 시작했는데, 이 짓에 재미를 너무 붙여버렸고, 어쩌다 보니 박사도 하게 생겼다. 기숙사 탈출은 아직이다.

잠 못 들어 뒤척이는 밤의 수는 줄었지만, 난 다시 또다시 불확실성 속 헤엄치기를 택하고, 어쩔 수 없는 이 불안을 덤덤히 받아들인다.

나의 세상이 조금씩 넓어질수록 그리운 사람도 시간도 늘어나고, 나의 세계에 파고들수록 바깥 소중한 것들에 소홀해져 중요한 것들을 너무 많이 놓친 것 같다.

늘 하는 다짐이지만 나의 사람들을 더 잘 챙기는 사람이 될게요.


변화가 인생에 스며드는 것이 느껴진다. 변화는 존재 그 자체이겠지만 특히 뚜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티셔츠를 입을 때, 머리통에 살짝 걸렸던 옷이 쑥 하고 넘어갈 때의 느낌이랄까.

근래에 세상은 전보다 나에게 특별히 따듯했고, 참을성 있고, 자비로웠다. 나의 무심함에도 빛났고 나의 날카로움도 이해해 주었다. 나도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내가 원하는 것 그리고.

지난 수년은 나의 목소리에 집중하려 했다. 내가 원할 거라고 들은 것, 사회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 다른 이가 나에게 바라는 것의 잡음에서 벗어나 진정 나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되고 싶은 사람. 이 여정은 현재진행 중인 노력이고 끝이 안 보이는 배움이자 명상이다.

최근엔 새로운 고민을 한다. 내가 원하는 것과 옳은 것 (그것이 무엇이던) 사이의 고민. 나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는 것과 어쩌면 다른 이에게 아픔을 줄 수도 있는 것 사이의. 나는 몰랐다는, 의도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내가 받았던 상처를 다른 이에게 반복하고 싶지 않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좋은 영향력을 끼쳤으면 한다. 세상에 선함을 더하고 고통을 덜고 싶다.


채식.

고기를 먹지 않는다. 요점은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가 이고, 그들은 명백히 고통을 느끼며, 매 년 현존하는 인구의 수에 버금가는 가축이 끔찍한 고통 속에 죽임당하는 시스템은 인간의 demand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런 demand에 일조하고 싶지 않다.


Gap months.

석사 논문을 제출 후 박사 시작 전 2~3 달이 붕 뜨게 되었다. 영화를 엄청나게 보고 있다. 거의 매일 밤, 영화관 혹은 방구석에서 맥주와 영화 보면 크 정말 행복해. 그저께 본 Phantom Thread 에 압도당해 한참 넉다운 되었고 윤희에게의 마지막 대사에 심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Phoenix 라는 최애 독일 영화를 발견했다. 책 또한 잔뜩 보고 있는데, 지금 읽는 Reality Bubble 이라는 책은 읽을만 하고, Why Fish Don’t Exist, When Nietzsche Wept, Unveiled 는 세상 사람 모두 꼭 읽었으면 한다.

오늘도 혼영 혼맥 하려고 했는데 맥주 사놓는걸 깜박했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