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해변에 앉아 글을 좀 쓸까 했는데
34도 불타는 햇볕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바로 포기.
잠시 호텔로 피신해 에어컨 바람에 머리를 식히며 떠올랐던 생각을 적는다.




Ripples. 물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

태국 와서 물을 실컷 쳐다본다. 일렁이는 물결은 하루 종일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몇 년 전 친구에게 준 편지에 이런 거 비스무리하게 썼던 기억이 난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우리 코어에 힘을 딱 잡고 우리만의 삶을 서핑해 나가자

사는 건 물결 위 파도타기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는데,
그때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것 같다.
세상은 마음에 안 드는거 투성이었고
나를 끌고가려는 흐름에 맞선 투쟁, 지평선 너머의 가능성을 향한 모험이었다.

그럴 땐 열정 넘치는데 그러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그래.
지금은 힘이 많이 빠졌다. 훨씬 편안하게 헤엄 중이다.


사는 거 물결 위 파도타기 같다고. 우리 각자 물 위를 항해하는 거다.
시기에 따라 수영일 수도, 서핑, 돛단배, 혹은 다이빙일 수도 있겠지.

때로는 완만한 파도에 유연하고 편안하게 흘러간다.
잔잔한 물결 위 쉬어 가기도 하고,
나는 쉬고 싶은데 세상이 나를 쥐고 흔들 때도 있다.

물결의 흐름과 나의 방향성이 맞아떨어질 때면 온 세상이 내 편인듯하겠다.
어쩔 땐 급격한 해류에 휩쓸려 가고,
혹은 파도에 먹혀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미친 듯 발길질할 때도 있겠다.


며칠 전 문뜩 생각이 들었다. 나 어쩌다 보니 꽤나 멀리까지 나와 버렸지만
요즘 꽤 편안하게 항해하고 있다고.
종종 불안함과 두려움이 떠오르지만 이미 겪어본 이것 곧 지나갈 거라는 걸 알기에 잡아먹히진 않는다.

인생 조금 살아봤다고 파도타는 노하우 나름 생겨서 그런 걸까?
아님 단순히 지금 시기가 그런 걸 수도. 또다시 쓰나미가 나를 덮쳐 올지도 모르지.


살아지는 것과 살아내는 것
흘러가는 것과 헤엄치는 것
어느쪽에 더 가까울까.

전엔 살아지지 않기 위해 살아내야 하고, 세상의 흐름에 맞서 내 흐름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흘러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본다. 그래야 하는 시기도 있다고 봐.


다들 어때,
수영하고 있나요, 아니면 서핑? 돛단배, 스피드보트, 혹은 다이빙?



Outro

며칠 전 시작한 글, (이번 휴가) 태국에서의 마지막 밤에 마무리 짓는다.
그냥 좋아하는 물결 사진으로 도배하고 싶어서 시작한 글인데,
어쩌다 보니 좀 길어짐 히히

내일 아침 일찍 비행기라 공항 옆 호텔로 잡았더니 시내가 너무 멀다.
저번에 갔던 (너무 좋았던!!) 재즈바 다시 가고 싶었는데 두 시간 거리라니..
괜한 아쉬움에 맥주 하나 까서 호텔 로비에서 글을 쓴다.

3주 여행의 피곤함과 겹쳐서일까, 한 캔도 안 마셨는데 살짝 나른해진다.
휴가 동안 찍은 사진을 보면 내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좋고, 또 이런 태국이 있다는 게 고맙구.
나 꼭 돌아온다! ╰(*´︶`*)╯♡


그치만 나 이젠 좀 갈래,,
백사장과 에메랄드 빛깔 바다도 볼 만큼 봤구 피부도 까무잡잡 해질 만큼 해졌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