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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한 여자. 숏컷이 잘 어울리는 언니는 ‘걸크러쉬’ 돋는다. 숏컷에 후줄근한 여자는 ‘주변 시선에 x도 신경 안 쓰는 여자’라는 인상이 무심코 든다. 중성적인 것, 혹은 멋진 것. 둘 중 하나 (or 둘 다) 에 속하기 마련이다. 반면 – 당연히도 – 대부분 여성의 긴 머리에 대해 두 번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자연스러운 / 평범한 것을 두 번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숏컷은 아직까진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다. 숏컷을 한 여성에게는 어떠한 부가적인 포인트가 생긴다.

매력적인 사람들. 사회에는 (편리한) 가이드라인이 만연하다. 난 그 틀 안에 갇히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멋있다. 그게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투쟁이라도 말이다. 긴 머리 남자나 숏컷 여자에겐 어떠한 멋이 있다. 빨간머리, 삭발머리, 혹은 개성있는 옷차림도 마찬가지이다. 성별, 나이, 신분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멋지기 때문이다. 중요한건 나만의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 (혹은 가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내 안의 영감을 따르는 것은 내면의 동기와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것이야 말로 나에게 영감을 준다.

난 숏컷을 하고 싶어졌다.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수많은 자질의 집합에서 긴 머리를 퇴출하고 싶었다. 그냥 털일 뿐인데 너무 큰 의미가 부여되고 있었다. 내 정체성에서 쓸데없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거다. 나는 ‘긴 머리 지혜’가 아닌 그냥 ‘지혜’이고 싶었다. 전통적이고 식상한 젠더 이분법에 꺼지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것도 있다. 숏컷을 망설이는 유일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라는 두려움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숏컷을 했다.

… 그리고 나는 상당히 불편해졌다.

나도 정형화된 젠더 고정관념에 상당히 지배받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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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묘한 해방감과 특별함에 취했다. 목덜미가 시원해서 좋았다. 멋진 21세기 신여성이 된것만 같았다.

그런데 곧 온통 신경쓰였다… 유리창에 내가 비쳐 보일때면 ‘너무 사내아이 같아’ 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고, 내가 ‘덜 예뻐진 것’ 같았다.! 확실히 말해두는데,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와는 별개이다. 난 나의 여성성을 증명해야할 압박을 느꼈다. 예전, [일반적인] 긴 머리 때만큼의 여성성을 보여야 하는, 옅지만 분명한 강박이 찾아왔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평소에 나는 치마를 잘 안 입는다 (불편). 특히 정장치마는 극혐하고 가지고 있지도 않다. 숏컷 직후 정장을 입는 통역알바를 하게됐다. 숏컷을 한 내가 정장 셔츠에 슬렉스까지 입으니 이건 너무 ‘남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극혐하는 정장치마를 사 입어야 하나… 라는 꽤 진지한 고민도 했다.

긴 머리의 나는 남녀 구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듯한 스타일을 좋아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내가 스타일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던 것은 나의 [여성성]을 어느정도 받쳐주는 [여자 머리]가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저 머리 하나 짧아졌을 뿐인데, 그것도 단발에서 숏컷으로 길어봐야 고작 5센치 정도의 털을 잘라냈을 뿐인데, 잘려나간 머리의 길이만큼 나의 여성성이 함께 잘려나간듯한 느낌이 들었다. 얼른 머리를 길러야겠다 싶었다.

나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숏컷을 하면 길거리의 다른 숏컷들을 주시하게 되는데 ‘저 사람 머리 기르면 되게 예쁘겠다’라는 생각이 무심코 들어 놀라기도 했다. 내 무의식 깊숙히 자리잡아 있던, 여성의 아름다움은 ‘여성스러움’이다 라는 관념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잘려나간 머리의 길이만큼 나의 다른 면 – 옷차림, 화장, 악세서리 등 – 에서 보안해야만 할 것 같았다. 마치 광고 모델보다 눈이 작아서 아이라인을 짙게 빼고, 아이돌처럼 V라인이 아니라 보톡스를 고민하는 사람처럼. 나는 이런 사회적 압박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사회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닌 자기표현을 위해 꾸밈을 하는 거라고 믿었다. 근데 뭐, 사회가 정해놓은 ‘여성성’을 증명하러 애쓰는 내 자신이 너무나 극명했다.

맞다, 사회적 관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어딨겠어. 큰 집단의식 아래에서 개인은 쉬이 무력해지곤 한다. 난 더 자유로워지고파 머리를 잘랐는데, 그를 통해 나의 ‘비자유로움’을 마주하게 된 아이러니란!

나는 가장 나 자신일때 가장 아름답다. 결론적으론 난 자유로워졌다! 뭔 횡설수설인가 싶겠지만, 이것을 깨달았다 – 나는 더 진실된 내 자신일때 나 자신을 더 온전히 받아드릴 수 있고, 그럴 때 더욱 아름다워진다. 숏컷은 잠재되어 있던 고정관념에 내가 휘둘릴 기회를 주었고 이를 통해 나는 더 자유로워질 기회를 얻었다. 나의 무의식 뿌리깊이 내제된 관념을 알아챈 이후 타파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었다.

(내 기준) 가장 매력있는 사람들은 누군가 혹은 어떤 것이 되려 하기보단 진정한 자신 그대로를 발굴하고, 가꾸고, 성장시키는 이들이다. 당당하고 편안하게 본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진정으로 빛이 난다.

내가 당당하고 나 자신을 사랑할 때 가장 매력있다. 나는 아름답기 위해 긴 머리가 필요하지 않다. 나는 요즘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나도 좋다. 사랑스럽고 멋있고 예쁘다. 오늘은 평소에 잘 입지 않던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짧은 머리와 바람에 날리는 치마의 조합이, 뭔가 오묘하고 아슬아슬한게 기분이 좋아진다. 어제는 유니섹스 폴로셔츠와 반바지를 입었다. 소년과 소녀 사이에 있는듯한 느낌이 좋았다.

숏컷이 질린다면 긴 머리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때에는 ‘긴 머리 지혜’가 아니라 긴 머리 ‘지혜’ 에 더 가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