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way there, 반 왔다! (아마도)

느린듯 빠르게 지나가버린 첫 두 학기. 새 대륙 새 도시, 비타민 D, 강가와 맥주, 코로나와 함께한 일년.

베를린 석사 생활, 3학기 시작을 앞두고 돌이켜보기.

image

Mind & Brain 공부하면 이거 할 수 있음


1 – Mind & Brain 석사 프로그램 수업

베를린 생활의 막을 열어준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Berlin School of Mind & Brain 석사. 100을 꿈꾸며 왔다면 [프로그램의 한계 + 나의 한계] 때문에 75 정도 채워진 듯하다. 하지만 나는 꿈을 크-게 꾸는 사람이니까 75도 굉장히! 감사하다.


프로그램 수업 구성

대학교 강의와 같은 Core Module, 그리고 대학원 스멜의 Seminar가 있다.

Core Module은 대학교 강의같다. 큰 강의실에 교수님이 ppt 틀어놓고 100~200명 남짓한 학생 앞에서 하는 강의. 대학교 또 다니는것 같아서 의욕이 안 생겼다 ㅎㅅㅎ (졸업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리고 대망의 대학원 맛 Seminar! 매 학기 철학, 심리학, 신경과학 등에서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가 열린다. 저번 학기 재밌게 들었던 세미나 중에는 Dynamical Systems Theory 와 predictive processing account 와 같은 theoretical account에 관한 수업들이 있다. 지난 1년은 좀 쫄려서 철학 관련 세미나는 안들었다. 이제 한살 더 먹었으니 ✌️ 오는 학기엔 철학 관련 세미나를 들어볼 계획.


수업 분위기

역시나 열정 넘치는 학업 동지들. 질문은 물론이고 교수 의견이 마음에 안들면 함 붙어보자 (?) 식으로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나도 여기와서 수업 중 질문/참여를 더 많이 하게 됐다. 음, 대학교때는 거의 아무도 나서질 않으니 굳이 질문을 하려는 생각조차 안 했던것 같다. 의아한 점이 생겨도 교수보다는 구글에 의지했다. 하지만 여기선 옆에 애가 나대니 나도 마음 편히 나댄다. 😀

image

사실 철학 수업땐 다들 멍때리고 있음

이 문화는 다양한 배경의 학생이 모인 프로그램 특성상 장점인 동시에 단점으로 작용한다. 장점은 다양한 관점에서의 인풋이 모인다는 것. 다양성은 thinking outside the box, 즉 창의력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단점은 심리학 전공자라면 당연히 알 것을 저 생물학 전공 친구는 전혀 모르고, 철학 전공한 친구들은 당연히 아는 것들은 나는 모른다는 것. 그래서 가끔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2 – 연구실 실습 Lab rotation

두개의 랩에서 각 300시간, 총 600시간의 실습을 해야한다. 나는 랩 로테이션을 너무 너무 하고 싶어서 입학 하자마자 찾아다녔다. 덕분에 비교적 일찍 찾아서 두 로테이션 다 진행중이다. 둘 다 독일 최대 종합병원인 샤리테 Charité 소속 랩이다. (대학원 건물 바로 건너편에 샤리테 병원이 있다) 나는 computational modelling, brain imaging techniques 배우고 싶어 관련 랩에 지원했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마쳤어야 하는데 코로나 덕에 스케줄이 밀려 요즘 열일 중이다 🤓 )


Lab rotation 1

첫 번째는 Two-photon microsophy 데이터 분석. 아, 이거 참 재미있는 프로젝트인데 설명하려니 완전 범생이 각. 대강 공중부양하는 판 위에 쥐가 있다. 쥐가 자기 앞 스크린에 움직이는 그림을 보고 요리저리 움직인다. 그럼 우린 그 쥐의 대가리에 특별한 불빛을 쏘아서 뇌세포가 하는 말을 영상으로 담는 거다. 그럼 나는 그 영상을 가지고, 쥐가 뭘 보고 뭘 할때 어떤 뇌세포가 언제 어떤 말을 하는지를 해독 하는거다. (사실 다른 박사생/포닥이 대부분 하고 나는 숟가락만 얹음). 파이썬을 이용한다. 난 이렇게 또 파이썬을 독학한다 ᕙ(^▿^-ᕙ)

(이런걸로 신나하는 나 nerd 인정)

1년전엔 이런 method가 존재 하는지도 몰랐는데. 지금도 모르는 것이, 날 기다리는 것들이 무궁무진 하겠지. 배우고 싶은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Lab rotation 2

두 번째는 Rodent MRI 전문 랩. 학교 메일로 샤리테의 neurology department 소속 랩이 student assistant를 채용한다는 공고가 왔다. 프로젝트가 마음에 쏙 들어 바로 지원했다. 2주 후 인터뷰를 보았고, 감사하게도 붙어서 올해 1월부터 일 하고 있다.

내가 참여하는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AI 스타트업 기업과 협동으로 MRI 이미지 자동 분석 프로그램 개발 프로젝트. 지금까지는, 예를들어, 뇌종양 환자 뇌 스캔을 사람이 직접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종양을 표시했다. 하지만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동으로 종양/병변을 구분해내는 딥 러닝 알고리즘 개발 중이다. 내 업무는 개발중인 프로그램 평가, MRI 데이터 관리, 매우 간단한 스크립트 작성 & 돌리기 등이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DTI-based tractography이다. 아주 대충 말해 3D 뇌 연결 지도 만들기.

image

내가 작업중인 뇌

↑ 예를들어 요건 Corpus Callosum 과 연결되있는 루트들. 내가 지금 작업중인 뇌이다. 요런 루트를 뇌 전체에 만든다. 뇌 요 부위가 저 부위랑 얼마나 끈끈하게 연결되어있는지를 분석한다. 신기해.. 헤헤

감사하게도 여기서 일하며 받는 월급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3 – 돈벌이

위에 언급한 student assistant 월급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일주일에 10시간, 한달에 40시간 계약으로 시작했다 (월급 500유로). 근데 내가 들어오기 직전 다른 student assistant가 일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곧 일주일 20시간으로 늘리자는 오퍼를 받았다. 조금 빡쎌까 싶었지만 일 욕심 넘치는 나는 이틀 고민하고 수락하기로 했다 (너무 쉬워 보일까봐 오퍼 답장은 2주 뒤에 했다).

독일 법으로 학생 비자 소지자는 일년에 120일만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전공 관련 student assistant 일은 시간 제한이 없다.

월급은 한달에 1000 유로, 연금(?) 때면 약 914 유로. 베를린에서 한달 900유로로는 웬만해선 부족하다. 하지만 난 운이 좋게도 기숙사에 붙어 집세를 많이 아꼈다. 게다가 코로나 덕에 술집/식당 지출도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마트 맥주는 넘나 저렴한걸? 하하. 이리하여 위태위태한 finantial independence 성공.




늘 생각하는 거지만. 난 굉장히 운이 좋고 복이 많아. 감사할 일 투성이야. 그만큼 더 열심히, 최대한으로 살아야 해. 잊지 말자 지혜야, 늘 감사하기, 최선을 다하기. 빛과 그림자는 공존한다는 것을 망각하지 않기.

가끔, 아- 돈은 언제 벌고 모으지, 싶어. 나도 사람인데 돈 좋아하지. 좋은 집, 이쁜 옷, 풍요로운 휴가, 이런거 욕심나. 저 50유로짜리 후드티를 사면 이번달 생활비 초과라 포기 할 때면 슬퍼지기도 해. 😢 하지만 지금 생활이 너무 소중해. 다신 돌아오질 않을 시간인걸 알기에. 이 생활을 돈이랑 바꾸고 싶지 않다.

나 말고도, 대학원생은 많이들 공감 할거야. 많은 걸 포기하고 학업을 이어 나가는 것이 아니야. 걍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을 붙잡은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