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
다낭 3일 – 호이안 3일.
2019년 6월,
백수 입성/대학원 합격 자축 여행.
다낭 글쎄, 내 여행지 중 가장.. 별로였어. 시간은 소중했지만 배경은 그닥이었네.
다낭이라는 곳, 어땠냐면
1 – 내가 어디에 온건지 모르겠어. 베트남 사람들이 누군지 전혀 모르겠어. 어디든 현지인과 여행자는 구분되지만 이만큼 명백한건 처음이야. 이전 여행지에선 난 현지인의 터전에 구경 온 외부인이었어. 여기 내 발길이 닫는 곳 대부분은 관광객만을 위해 건설된 왕국같아..
베트남 정부가 관광객을 위한 가상 현실을 만든다면 이렇지 않을까? 뭐, 이미 가상현실이라 할 수 있을지도. 베트남 현지와 서양식 생활방식의 간극이 엄청나. 문화를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떠먹여진 느낌? 근데 그 간극에 관광객들이 비집고 들어와 계속 벌려 놓아. 그 관광객의 대다수는 한국인이고.

선진국 시민의 특권을 누리러 가기 좋아. 금수저 간접체험하기 딱 좋겠다. 해변가 뷰 고급 리조트에서 뒹굴거리다, 루프탑 수영장에서 인생 샷 건지고, 에그 베네딕트와 스파클링 와인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크으 이러려고 갔어야 하는데.. (?)
하지만 이게 목적이 아니라면 다낭 갈 이유 없어. 호화로움과 인생샷 이상을 원한다면 (시각에 따라서는 이하일수도) 딴 곳으로 가야해. 한국인과 한국인을 serve 하는 베트남 웨이터/택시기사/기념품가게 점원 밖에 안보여. 아, 뭐 명동에 온 중국인을 이해하는 시간은 가질 수 있겠군!
2 – 내가 불편한 진실 그 자체이다. 나의 현실에서는 홍콩 코딱지만한 아파트에서 돈 쪼개가며 연명하는 사회쪼랩이지만 베트남인의 현실에서는 본인들의 연봉 10배를 버는 선진국 여행객이다. 그들의 일주일 생활비를 밥 한끼에 쓰고선 ‘가성비 좋군!’ 이라 감탄하는 특권층이다. 한남동 컨셉의 카페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3000원짜리 커피를 홀짝거리며 맥북을 켜고 다낭의 상업화를 불평하는 특권층이다. 나는 또한 그저 진정한 베트남을 느낄 수 없다는 이유로 관광으로 유지되는 도시의 관광객을 불평하는 속 편한 관광객이다.
(프로불편러 지혜 등장. 두둥)
[비유하자면 한달에 최소 2~3천 버는 환상의 나라 사람들이 때거지로 한국에 놀러온다. 길거리는 그들을 위한 이만원짜리 커피를 파는 고풍스런 카페로 가득찬다. 그들은 만원짜리 국밥의 가성비에 감탄한다. 우리 도시는 그들의 입맛에 맞춰 돈을 뽑아내기 최적화된 모습으로 변해간다.]
다낭 숙소 근처 바에 갔어. 싱가폴 사람이 운영하고 백인아저씨들이 주 고객층인 작은 술집. 어쩌다보니 백인 남자들(세상 최고 특권층)과 한국 여행객의 superiority complex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우월감 컴플렉스) 에 대해 논했어. 한국 관광객들은 베트남인들을 아랫사람 마냥 대한다고, 그게 너무 화난다고 하더라. 백인들이 인종차별에 대해 불평다는것 자체가 어이없긴 하지만 – 부인할 수 없었어.
이번 여행에서 좋았던 점
자 이제, on the bright side 😀 이번 여행이 즐거웠던 이유!
1 – 스쿠바 다이빙. 초등 5학년 때 스쿠바 자격증을 따고 14년만의 두 번째 다이빙!! (잃어버린 14년을 찾아서..)
아, 난 바닷속이 정말 좋아! 정말.. 좋아… ㅠㅠ 울퉁불퉁한 해저 지형을 따라 뻗어있는 산호초, 귀여운 멍청이 물고기들과 새우와 망둥어. 고요함 속 유일한 내 숨소리. 붕 떠있는 감각,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미세하게 뜨고 가라앉는 것. 환성적이야.
근데 바다 자체는 솔직히 그냥 그럼 ㅋㅋㅋㅋㅋ 언젠가 발리로 다이빙하러 갈테다!!!!! (돈모으자 지혜야)
2 – 친구. 한국에서 일하는 친구랑 다낭에서 만났다는 것. 바보같은 짓 많이 하고 바보같은 사진도 많이 찍었다. 예!!
3 – 짧은 만남들. 한국 기준 터무니 없는 (낮은) 급여를 받는 다이빙샵 운영진 (대부분 잘사는 서양국가 출신, 한국인 강사분도 계셨다. 엄청 친절하게 지도해주심!). 아무리 생각해도 열정밖에 모르겠어 그 이유를. 하나의 큰 열정으로 살아가는 삶은, 그래서 많은 걸 내려놓게 되는 삶은 어떤걸까.
같이 다이빙한 허니문 커플. 함께 다이빙을 120번 넘게 했다고. 물 속에서 손 잡고 놀던데… (부러워!!!!!) 점심 후 휴식시간, 해변에서 물놀이 하고 안고 뽀뽀하는게 예뻤어. 나도 내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할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스노클링 하러 온 5명의 친구들 – 호주에 사는 베트남인/싱가폴인/호주인. 그 중 호주 남자와 베트남 여자가 곧 결혼하는데, 그 전 (그나마 자유로울 때) 친구들끼리 여행왔다고. 만약 내가 결혼을 한다면 이럴 친구들이 있을까?
나도 그들에겐 신기했나봐. 한국사람인데 필리핀에서 11살때 스쿠버 자격증 땃고, 그 후 두번째 다이빙왔어. 홍콩에서 코딱지만한 아파트에 살면서 개같이 일하다 탈출했어. 곧 유럽으로 뇌 공부하러 가. 매 년 다이나믹해지는 내 인생의 내러티브. 모든 것이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해!
그리고 물론, 다낭에서 흔쾌히 집을 내주었던 내 친구의 친구분, 윤희언니. 세삼히 잘 챙겨주신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분 ㅎㅎㅎ 정말로 감사!
4 – 나에게 맞는 여행지를 이젠 훨씬 더 잘 고를 수 있겠다.
요약
리조트에서 편안함과 높은 삶의 질을 누리겠다면 나쁘지 않아. 근데, 도시 자체가 별로 안예뻐. 왠만한 가게 가면 한국말로 주문 받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외국어가 불편하면 다낭 좋지. 근데 이왕 가는거 더 예쁜 도시로 가는건 어때?
나 역시 친구/가족과 추억을 쌓을 목적으로만 갔다면 만족했을 수도 있어. 하지만 난 그 이상을 원했어. 재미와 더불어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의 폭이 넓어졌으면 했어. 하지만 다낭/호이안은 나를 spoil시켜 (번역하자면, 버릇 잘못 들여?) 돌려보내려 해. 욕심은 크고 준비는 귀찮았지.
그치 – 그렇게 진짜 베트남을 원했다면 충분히 경험할 수도 있었겠지. 남들이 안가는 산속으로, 들판으로, 숨겨진 여행지를 찾아가면 됐잖아? 맞아, 그러기엔 이 더위를 못버티겠고, 시원한 에어컨과 쾌적한 환경을 포기 못한 나의 탓도 있겠지.
어쨋든 나와 다낭의 궁합은 Nope.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면 나트랑이나 푸콕 가주세요… 나도 가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