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 2019 | Globetrotting

홍콩 응급실 체험기 (feat. 새벽한시)

몸살이 났다. 비를 맞은 탓일지, 아픈 플렛 메이트와 밥을 나눠먹은 탓일지. 월요일 아침, 목이 컬컬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병가를 냈다. 하루 푹 쉬면 날거야.

날이 어두워졌다. 머리가 쿵쿵대 화장실까지의 5발자국이 미션 임파시블이 되었다. 오늘 밤 푹 쉬면 낫겠지…? 이러다 혼절했는데 아무도 모르면 어떡해? 열이 너무 높으면 뇌손상 온다는데 나 바보 되면 어떡해? 이런 의식의 흐름에 약 30분 떠밀리다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9살 이후 처음으로 내가 아파서 때문에 병원 가는건데 (치과 제외) 홍콩 정부병원 응급실이다. 민간보험제도가 없는 홍콩에서는 (이제 생긴다고 했던것 같은데) 나 같은 사회초년생 (금융권 밖) 찌그래기에겐 개인병원이란 넘 럭셔리한 것. 개인병원 진료비만 7만원, 약 처방받고 추가검사 한 두개 받으면 20만원 순식간에 증발.

대신 정부병원 제도가 잘 되어있어 비교적 저렴한 비용에 검사 및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대신 의사선생님 얼굴 뵙기까지 엄청난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대신 38.8도 열나는데 의자에 앉아 벌벌 떨며 두 시간 멍때려야 한다 (= 어젯밤의 나). 혹은 식중독에 계속 토하면서 배를 움켜잡고 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친구의 간증). 역시 홍콩 정부는 정신없는 홍콩생활에 익숙해진 국민들 인내력까지 길러주는군! How thoughtful.

홍콩 응급실 대기표

“넌 ‘준-긴급환자‘ 밖에 안되니까 최소 2시간 대기~”

응급실 체험을 통해 느낀 것들:

1 – 난 역시 운이 타고났다.

주변인피셜 대기시간 평균 4시간인데 나는 1시간 40분밖에 안기다렸다! 와! ㅋ

2 – 뜻밖의 위로.

어제가 홍콩대 PhD 오퍼 거절한 날이었다 (오퍼 받으려면 3백만원 디파짓 내라길래 에잇 떠나자! 하고 거절함). 아무리 내 신념이 견고하다 해도 (유럽에 가겠다는 신념) 머리 뒷구석이 아무래도 싱숭생숭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 밤 응급실 체험이 예상치 못한 위로가 되었다. 그래 홍콩 떠나자~ 복지 좋은 곳으로…..

3 – 오랜만에 비상 연락처를 적을 일이 생겼다.

망설임 없이 적어낼 이름이 있었다. 내 나라 밖에서 건강검진 할때, 번지점프 할때 고민 좀 하다 친구 한명 이름 적는게 당연했는데. 그 짧은 고민의 과정이 생략됐다는거 되게 좋더라.

4 – 난 역시 튼튼하다.

어제 그렇게 아팠는데.. 자고 일어나니 멀쩡하다. ?(ヅ)ノ 약을 한봉지 가득 받았는데 이걸 먹어야하나.. 약같은거 없이 내 면역체계는 24년동안 열일하며 나를 지탱해왔는데, 약보다 내 면역세포가 더 믿음직스럽다 (나는 약을 먹은적이 거의 없다). 아침에는 머리가 좀 아팠어서 병가를 냈는데, 오랜만의 출근 안하는 평일이 정말 좋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에 와서 이렇게 오랜만에 블로그 포스트도 쓰고. 헤헷.

근데 지금 머리가 쿵쾅대서 집으로 다시 가야겠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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